등록 2002-12-02 수정 2015-09-16 조회 20367
한국관광공사의 공공데이터를 이용해 경기도 김포시 경기 김포시의 홈페이지, 연락처, 이용정보, 위치(지도) 등 각종 정보를 제공합니다.
경기도 북서단에 위치해 있으며, 김포 반도의 지역으로 동쪽은 한강을 건너 파주시와 고양시, 서쪽은 염하를 건너 강화도, 북쪽은 조강을 건너 개풍군에 접하고 있으며, 남동쪽으로는 인천광역시, 부천시, 서울 특별시와 접한다. 전체 면적이 276.64㎢이며 총 인구가 341,424명(2015년 1월 기준)에 이르고 3읍 3면 5개동으로 되어 있다.
* 자연환경
남동에서 북서로 길게 돌출한 김포반도는 오랜 침식작용을 받아 낮아진 준평원과
한강 중상류 및 지류에서 운반된 토사가 매립되어 발달한 충적지가 합하여져, 전체적으로 매우 낮고 평탄한 김포평야를 이룬다. 해발 100m 이하의 구릉성산지는
김포시 서부에 산재해 있으며, 굴포천과 계양천 등이 한강으로 흘러 들어가 동부의 한강 연안에는 넓고 두꺼운 충적지가 발달해 있어서
고동저형의 지세를 이룬다. 주요 산으로는 문수산, 승마산, 장릉산 등이 있다.
* 상징물
1) 시의 꽃 - 개나리
개나리는 우리시에 널리 자생하고 있으며,잎이 나기전에 꽃이 먼저 피어 봄철이면 주민의 마음에 풍요와 기쁨을 전해 줌으로써 일년을 시작하는 주민에게 용기와 의욕을 북돋아주는 희망을 상징
2) 시의 나무 - 느티나무
느티나무과 낙엽 고목으로 나무 중에는 수세가 크고 모양이 안정 되어 있으며, 예부터 주민의 화합 장소로 항상 친숙 하면서도 장중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내어 굳건한 의지를 상징
3) 시의 새 - 까치
까마귀과의 잡식성 새로 사시사철 한곳에서 서식. 모양이 담백하고 습성이 고결한 길조로 자연과 고향을 사랑하는 시민의 마음과
일치하여 안정과 번영을 상징
* 역사
고구려, 백제,신라 삼국이 정립하고 있었을 때 김포시 지역은 삼국의 각축장이었다. 이 지역이 최초로 '김포'라는 지명으로 역사의 기록에 나타난 것은 고구려
장수왕 63년(475)이다. 신라가 한반도를 통일한 후 경덕왕 1년 전국토를 9주5경으로 재편할 때 한주(漢州)에 속한 김포반돌을 김포현 (김포, 고촌, 검단 지역),
분진현(통진, 월곶 지역), 동성현(하성지역),수성현(양촌,대곶지역),공암현(서울
강서구지역)으로 나누고, 앞의 네 현은 장제군(長堤郡 : 현 부천)의 영현( 領縣),
공암현은 율진군( 栗津郡 : 현 시흥)의 영현이 되었다.
고려 성종 때에는 관내도(關內道 : 현 경기,황해지역)에, 현종 9년(1018)에 수주(樹州 : 부평부)의 속현이 되었다가 명종 2년 (1182)에 김포가 분리되어 비로소
감무( 監務)를 두었고, 신종 원년(1198)에 이 고장에 어태(御胎)를 묻은 뒤 현령(懸鈴)을 두었다.
조선조 태종 14년(1414) 8월 양천현을 합병하여 금양현(金陽懸)으로 했다가 동년 10월 다시 분리하여 양천은 금천(衿川-현 시흥), 김포는 부평부에 편입시켜 김포라는 이름조차 사라졌다가 동왕 16년 7월 원상 회복시켜 김포현을 설치하였다.
인조 10년(1632) 북성산(北城山 )에 장릉(章陵)을 모신 후 김포현을 군으로 승격시켰고, 고종 32년(1895) 개편시 인천부에 속하는 군이 되었고, 고종 33년(1896)에는 4등 군수가 통치하는 군이 되었다.
옛날 통진, 월곶 일대에 자리 잡았던 평회압( 平淮押, 또는 比史城, 別史波兒, 比北史城) 현은 경덕왕 16년 개정시에는
분진현으로 고쳐 장제군의 속현이 되었다가 고려때 통진현으로 고친 다음 공양왕
3년(1391)에 동성, 수안 두현을 합병하고 비로소 감무를 두었고, 조선조에 들어와 태종 13년(1413) 현감을 두었다.
숙종 20년(1694)에 통진부로 승격되었다가
고종 32년 개편 때 다시 통진군으로 되었고 동왕 33년에는 3등 군수가 다스리는
군이 되었다. 옛 동자홀현(또는 憧山)과 수이홀현은 경덕왕 16년 각각 동성현(장제군 영현), 수성현(장제군 영현)으로 개명된 뒤 고려초 수성현은 수안현이 되었다가 공양왕 3년 통진현에 병합되어 역사의 전면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양천땅의 옛고을 제차파의현은 경덕왕 16년 공암현으로 고쳐 율진군의 영현이 되었고, 고려 현종 9년 (1018)에 수주에 속했다가 충선왕 2년(1310) 다시 양천으로
회복되어 현령을 두었다.
조선조 태종 14년 8월 김포에 합쳐서 금양현이라 했다가 동년 10월 재차 분리하여 금천에 합하였다가 동왕 16년 현으로 복귀시켜 현령을 두었고 고종 32년 전국 23부를 폐지하고 13도로 개편할 때 비로소 군으로 승격하여 인천부에 속했다.
1914년 3월 전국적인 행정구역 개편 때 김포, 통진, 양천군이 '김포군'으로 통합되었다.
통합 전 김포군에 속했던 군내면, 석한면, 고현내면은 군내면으로, 검단면, 마산면, 노장면은 검단면으로, 임촌면, 고란태면은 고촌면으로, 통진군에 속했던 부내면, 보구곶면, 월여곶면, 소이곶면, 고리곶면, 반이촌면, 질전면, 봉성면, 대파면, 양릉면, 상곶면은 지역 조정을 거쳐 월곶, 하성, 양촌, 대곶면으로,
양천군의 현내면, 삼정면, 가배곡면, 남산면, 장군소면이 양동, 양서면으로 되어
9개 면으로 조정되었다.
* 문화
1) 민속
▶통진면 옹정리의 '농상패놀이' 가 있다. 논김을 맬 때 농사반을 구성하여 농기를 앞세우고, 농악대가 7채 '길군악' 을 치면서 신나게 놀이를 한다. 선소리꾼의 긴 가락, 자진가락, 휘몰이가락 등 주고받는 농요가 이어져서 흥을 돋운다.
▶통진면의 통진두레놀이는 제 38회 전국 민속 예술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2) 동제
김포읍 북변리, 감정리, 그리고 하성면 미곡리, 통진면 등에서 매년 10월에 각각
산신제를 지내고 있으며, 음력 10월20일에는 손돌공묘 앞에서 손돌공진혼제를 지낸다.
유모차 대여: 없음
신용카드: 없음
애완동물: 없음
문의 및 안내: 김포시청 031-980-2114
경기도 김포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