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재선생 생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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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부지방 전통적 농가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는 곳, 월남 이상재선생 생가 *

이상재 선생 생가는 안채와 사랑채가 있는 초가집으로 앞면 4칸, 옆면 2칸 규모이며 대문은 솟을대문을 두었다. 안채는 1800년 경에, 사랑채는 1926년경에 지었다고 하나, 원래 건물은 1955년에 없어졌다. 지금 있는 건물은 1972년, 1980년 두 차례에 걸쳐 복원한 것이다.특징으로는 안채와 사랑채를 구분 짓는 내외담 없이 생가터에 들어서면 안채가 훤히 개방된 구조이다. 중부지방의 전통적 농가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교육적 가치가 매우 높으며 전면 지붕의 길이가 후면보다 길게 만들어진 것이 특징이다. 생가 옆의 유물전시관은 1990년 11월 착공하여 1991년 7월에 개관하였으며, 선생이 생전에 남기신 유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 건국훈장에 빛나는 월남 이상재 선생에 대하여 *

이상재는 본관은 한산(韓山), 호는 월남(月南), 본명은 계호(季皓)이다. 1867년 과거에 낙방하고, 서울에서 사귄 박정양이 1881년 조사 시찰단(朝士視察團)으로 일본에 갈 때 수행원으로 따라갔다. 1894년 갑오개혁 후 학무아문참의를 지냈고, 그뒤 내각총서 및 중추원 1등의관 등을 지냈다. 1896년 서재필과 독립협회를 조직하여 부회장이 되었고, 1898년 만민공동회를 개최하였다. 1902년에는 개혁당 사건으로 3년 동안 복역하였다. 1923년 보이스카우트 초대 총재가 되었고, 이듬해 조선일보사 사장으로 취임하였다. 1927년 신간회 초대 회장에 추대되었으나, 3월 29일 병으로 죽었다. 장례식은 우리나라 최초로 사회장으로 치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문화재 정보]
지정종목 : 시도기념물
지정번호 : 충남기념물 제84호
지정연도 : 1990년 12월 31일
시대 : 일제강점기
종류 : 생가
크기 : 면적 1,434㎡
유물현황 : 서적 1132점,신문기사 80점,만장 56점,상소문 1점,임명장 6점,사진 49점,가훈 1점,병풍 1점,친필 3점


홈페이지

서천 문화관광 http://www.seocheon.go.kr/tour.do


주소[지도]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종단길 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