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04-02-25 수정 2024-08-14 조회 62439
한국관광공사의 공공데이터를 이용해 경상남도 진주시 진주성의 홈페이지, 연락처, 이용정보, 위치(지도) 등 각종 정보를 제공합니다.
※ 19_20 한국관광 100선 ※
진주와 관련된 역사적 사건은 많다.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인 진주대첩 임란 때의 논개의 순국,1862년 전국적인 농민항쟁의 시발점이 된 진주농민항쟁 등 큰 사건만 해도 부지기수이다. 진주성은 삼국시대 거열성(居列城), 고려시대 촉석성 (矗石城)으로 불렀던 것으로 조선시대에 이르러 진주성으로 개칭되었다. 석축 된 성의 둘레가 약 1,760m(4,359척), 높이는 약 5~8m(15척)이며, 성 안에 우물과 샘이 각각 3개 있고, 군창(軍倉)이 있었다고 한다. 이보다 앞선 동국여지승람에 실린 하륜(河崙)(1347~1416년)의 성문기(城門記)에 보면 성이 옛터만 남아 언제 쌓은 것인지 알 수 없는데, 왜구의 침입이 빈번하여 고려 우왕 5년(1379년)에 진주목사 김중광에게 석축하게 하였다고 한다. 이 때 성의 둘레는 800보이고, 성의 높이는 세길을 넘으며 의정문(서쪽), 지제문(북쪽), 예화문 (남쪽)이 있고, 성 밖은 서쪽으로 청천(靑川)이 남쪽에는 긴강(남강)이 흘렀으며, 북쪽에는 못이 있는데 성과 못 사이에는 참호를 팠다고 했다.
이처럼 고려 말에 왜구방어의 보루로 고쳐 쌓은 이 성은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호남으로 진출하려는 왜적을 막는 관문이 되었다.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로 제1차 진주성싸움을 드는 것은 3,800여명의 군사로 10배에 가까운 왜적을 물리쳤을 뿐 아니라, 이 성을 지킴으로써 곡창지대인 호남을 지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1593년 제2차 진주성싸움에는 민.관.군 7만여명이 왜군 10만여명을 맞아 11일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모두 순의하였고, 이 때 논개가 적장을 안고 남강에 투신하여 충절을 다한 곳이기도 하다. 성내는 촉석루, 김시민 전성각적비, 의기사, 서장대, 북장대, 창열사, 국립진주박물관, 호국사, 야외공연장 등이 있다.
* 의기사(義妓祠)
경상남도 문화재자료인 의기사는 임진왜란 당시(1593년)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투신한 논개의 영정과 신위를 모신 사당이다. 논개는 진주성이 함락되자 성민과 나라의 원한을 갚기 위하여 왜장을 촉석루 아래 의암으로 유인한 후 함께 남강에 몸을 던져 순국하였다. 의기사는 그 의로운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영조 16년(1740년)에 경상우 병사 남덕하(1688~1744년)가 창건한 이래 두 차례에 걸쳐 중수하였으며, 지금의 건물은 1956년 의기창열회가 시민의 성금을 모아 중건한 것이다.
http://www.jinju.go.kr/tour.web
이용시간: 매표시간 09:00 ~ 18:00
하절기(3~10월) 05:00~23:00
동절기(11~2월) 05:00~22:00
주차시설: 있음
- 공북문 주차장 (대형9면, 소형26면)
- 보건소 주차장 (소형 84면)
- 진주성 관광버스 주차장(관광버스 14면)
유모차 대여: 없음
신용카드: 없음
애완동물: 없음
문의 및 안내: 진주성관리사업소 055-749-5171
이용가능시설
[주요시설] 촉석루, 의암, 의기사, 임진대첩 계사순의단, 김시민장군 전공비, 호국의 종, 촉석정충단비, 쌍충사적비, 김시민장군 동상, 영남포정사, 공북문, 북장대, 국립진주박물관, 포루, 야외공연장, 서장대, 창렬사, 호국사
입 장 료
어른 - 개인 2,000원 / 단체 1,400원
청소년 및 군인 - 개인 1,000원 / 단체 600원
어린이 - 개인 600원 / 단체 400원
※ 단체 : 30명 이상
※ 진주시민 : 무료(신분증 소지)
※ 무료 : 7세 미만 어린이, 만 65세 이상, 장애인 복지카드, 국가유공자증 소지자
주차요금
소형 - 30분 500원, 10분 초과당 200원
대형 - 30분 1,000원, 10분 초과당 400원
※ 진주성 관광버스 주차장에 관광버스 주차시 무료
화장실
있음
한국어 안내서비스
문화해설사 안내 가능
문의 : 055-749-7449
외국어 안내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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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