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곡사(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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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곡사는 신라시대에 창건되어 일대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던 사찰이다. 통일신라 법흥왕 때에 응진 스님이 창건하여 절 이름을 국태사(國泰寺)라 하였고,고려 광종 대에 선종(禪宗) 5대산문의 하나로 손꼽히는 대찰이었다. 최근 지곡사지에 대한 발굴 조사가 실시되어 8~9세기 대의 유물이 출토되어 위와 같은 이야기를 뒷받침하였다. 지곡사는 일제강점기인 1913년을 전후하여 폐사되었다가, 근래 옛 지곡사 산신각 자리에 중창하여 옛 지곡사의 전통을 이어 받아 법등을 밝히고 있다.

* 창건

옛날의 지곡사는 인근인 내리 772-4번지 일대에 있었는데 통일신라 법흥왕 때에 응진(應眞) 스님이 창건하여 절 이름을 국태사(國泰寺)라 하였다고 조선시대 후기에 기록된 『지곡사용화당기(智谷寺龍華堂記)』에 전한다. 또 진관선사오공탑비(眞觀禪師悟空塔碑)에는 고려 광종(光宗) 대에 고승인 진관 석초(眞觀釋超) 스님을 지곡사의 주지로 임명 하였다고 한다. 당시에 절을 크게 중창하여 선종(禪宗) 5대산문의 하나로 손꼽히는 대찰이었으나 1913년을 전후하여 폐사 되었다.

* 연혁

지곡사와 관련된 문헌은 적은 편인데 전성기에는 300여 명의 스님들이 있었고, 물방앗간이 12개나 되었다고 한다. 절 입구에 홍예다리를 놓아 오색 무지개가 공중에 걸린 듯 하여 다리를 건너면 티끌세상의 번뇌를 씻을 수 있다고 하여 세진교(洗塵橋)라 하였는데 그 홍교는 흔적만 남아 있는 길가에 세진교비(碑)가 홀로 서서 옛 영화를 대변해 주고 있다. 추파 홍유(秋波泓宥, 1718~1774) 스님이 지은 『유산음현지곡사기(遊山陰縣智谷寺記)』에 따르면 지금의 축대 위에는 대웅전이 있었고 왼편에는 약사전 오른편에 극락전이 있었으며 앞에는 큰 누각, 누각 밖에는 천왕문과 금강문이 있었고 회랑과 요사가 좌우로 늘어서 있어 영남의 으뜸가는 사찰로 선객과 시인들이 즐겨 찾던 가람이었다고 전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산음현(山陰縣)』조에는 고려 예부 상서 손몽주(孫夢周)가 쓴 혜월(慧月)과 진관(眞觀)의 두 비(碑)가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귀부(龜趺) 2기만 남아있고 다행히 비문은 기록으로 전해오고 있다. 조선시대 후기인 18세기에 이르러서는 한암 성안(寒巖性眼)과 추파 홍유 스님이 절의 중흥을 도모하였으나 20세기에 들어 일제의 침략으로 폐사가 되었으며 한암대사비와 추파당대사의 탑비가 절 위쪽 300m 지점에 있다. 옛 지곡사지에 남아 있는 유물로는 세진교 각자(刻字), 우물 배례석편, 수조 4기, 귀부2기, 물방아 확(수조), 부도, 장대석, 축대 등이 남아 있다. 무상한 세월과 함께 대찰이 폐허로 변했지만 지곡사지에서 멀리 동쪽으로 황매산(黃梅山)을 바라보면 부처님이 누운 와불 모습으로 바라보며 신비감을 더해준다. 지곡사지는 경상남도기념물 제194호로 지정되어 있다. 현재의 지곡사는 1958년에 강덕이(姜德伊) 스님이 중건 했는데 본래의 지곡사 배치와는 무관하게 전통사찰로 지정되어 있다.


이용안내

쉬는날: 연중무휴

유모차 대여: 불가

신용카드: 없음

애완동물: 불가

문의 및 안내: 지곡사 055-972-2954


상세안내

화장실
있음


주소[지도]

경상남도 산청군 산청읍 웅석봉로 396